복학 후 필기정리를 컴퓨터로 하기로 마음먹고, 5주동안 실천했다. 그 결과

(1)장점 - 손이 덜 힘들다. 서체가 단정하다. 공유 및 저장이 간편하다. 가끔씩은 수업 내용을 글로 잘 정리하며 잘 따라갈 수 있었다.

(2)장점처럼 보이지만 실은 단점으로 작용한 것들
- 교수님의 말씀을 거의 다 빼놓지 않고 받아 적을 수 있다. - 하지만, 그 덕분에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구분이 거의 되지 않는다. 실제로 필기파일을 인쇄해보니 빼곡한 글씨만 가득하고, 알아보기가 너무 힘들다. 그리고 손으로 적은 필기는 그 사이사이 비어있는 간격을 메우기 위해 머리가 상당히 동원되는데, 컴퓨터 필기는 그런 사고가 자리잡을 공간이 없다.

(3)명백한 단점
- 손으로 필기 하는 것보다 확실히 수업 중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. 실제로 한 시간 동안 필기를 열심히 하고 마치면, 머리가 멍해진다. 솔직히, 수업에서 무슨 내용을 다루는 지도 잘 모르겠는 경우가 있었다.
- 무게운 무게, 사실 이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게 확실한 효용이 있다면 별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으니까...
- 수업내용을 정리하기가 번거롭다. 컴퓨터 → 컴퓨터의 경우 ALT+TAP으로 왔다갔다해야하며, PPT자료라도 있는 수업일 경우 그 노동이 배가 된다. 컴퓨터 → 노트는 그 보다는 조금 낫지만, 여전히 두개의 내용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게 많은 신경이 쓰인다.
-  넷북의 작은 화면 때문인지 수업 필기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. 여러 단점들 중 가장 큰 단점인거 같은데, 한 강의 내에서조차 수업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, 내가 지금 작성하고 있는 필기가 어떤 내용을 담는지를 알 수가 없다.
- 인쇄 및 보관의 불편함

(4)결론
컴퓨터로 하는 필기; 효용 < 손실
수업 중에서의 집중도&이해도 하락, 수업 후 필기 정리&리뷰의 어려움, 필기정리 후 여러 강을 하나로 묶어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단계에서의 과정의 어려움(인쇄, 파일 정리의 번거로움), 그리고 상상력의 저하 및 활발한 사고의 중지. 컴퓨터 필기는 이렇게 네가지의 어려움이 있었다. 2&3번은 도구의 불편함이라고쳐도, 1&4번은 공부본질을 방해하는 것이니까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. 그래서 나는 비록 팔이 조금 아플지라도, 이번 학기 6개의 모든 수업의 필기를 예전처럼 손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.

 

#사람은 목적이고, 기술은 도구일 뿐이므로 우리는 기술의 발전 중 긍정적인 부문만을 취하고 자율을 통해 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다지만 사람이 정말 그렇게 자율적인 존재인가?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. 기술의 변화란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쓰나미와 같다고 생각한다. 대응책을 함께 고민한다면 적어도 쓰나미를 피해 더 잘 달아나거나, 꽤 안전한 피난처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쓰나미 속에서 살아남는 것 만큼이나 예외적인 일이 될 것이다. 조금 염세적인 것 같지만, 그렇다고 내가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않나. 대부분의 개인들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라는 변화에서 제외되거나 포섭되거나 하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. 다만 그렇더라도 디지털 세계를 만끽하는 도중에 잠깐 잠깐씩 이렇게 마음이 불편했으면 좋겠다. 그 불편함으로 나는 내 사고와 자아를 디지털 세계의 편리와 즐거움 속에서 지킬 수 있을 것이다.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. 그리고 솔직히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않는다. 왜냐하면 내가 지켜본 주위 사람들은 모두 나차럼 이런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, 또 그걸 고민할 정도로 깊이 매몰된 것 같지는 않았다. 그들은 여전히 정감있고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. 우리들은 단지 서핑을 하고 있을 뿐이다. 계속 균형을 유지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.

'2011년 3, 4분기 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마음이 너무 헛헛해  (0) 2011.09.30
초가을 근황  (0) 2011.09.28
9월 4일  (0) 2011.09.04
9월 3일  (0) 2011.09.03
9월 2일  (0) 2011.09.03

설정

트랙백

댓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