야심차게 시작한 블로그였는데, 바쁜일정과 개인적인 게으름으로 블로그를 한동안 방치했었다. 음음.. 초대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. 내가 나를 한동안 겪어보고, 관찰하고 생각하다 보니까 나는 원래 무엇인가를 빠짐없고 꾸준히 해 나가는 성격이 아니다. 성격이야 어쩔 수 없지만, 습관은 고칠 수 있으니 너무 낙담말고. 한번 흐름이 끊기더라도, 계속해서 다시 시작하는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.

지금 작성하는 이 포스팅은 따로 주제가 있다기 보다는, 간단한 일기나 에세이가 될 것 같다.

우선 장기하와 얼굴들 얘기부터 할께. 대략 3년전,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장기하와 얼굴들이 데뷔했었던 것 같다. 싸구려 커피, 달이 차오른다, 기상시간은 정해져있다를 듣고 이 밴드는 참 독특하고 찌질하구나란 생각을 했었다. jw은 술자리에서 장기하가 88만원 세대의 대변자처럼 보이는 것 같아 싫다고 했지만, 나는 뭐 그냥 좋아했다. 그러다가 어떤 라디오에서 '별일없이산다'의 가사를 풀이하는 것을 듣고 흥미가 생겨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, 그저 멍-했다. 

네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.
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거다. 그게 뭐냐면,
나는 별일없이 산다~, 뭐 별다른 걱정없다~~,
나는 사는게 재밌다~, 하루하루 즐겁다~!!

장기하가 힘을 주어 툭툭 내뱉는 말투가 놀랍고 매력적이었고, 둘째로 가사의 내용과 거기에 공감하고 있는 나를 보고 놀랐지. 부산에 사는 친구들과 가끔씩 연락을 할 때 걔네들이 별일 없이 잘 산다고 얘기하면 "정말로 그래?" 라는 생각이 들었고, 또 이어서 드는 생각이 "아씨.... 그럼 나는 뭐지?(뭐하는 거지?)" 내가 정말 듣기 싫었던 소리는 걔네들이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그런 얘기였던 거다. 물론 나도 통화할 때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항상그랬지 뭐... 이런 말이 싫었던 이유가 또 한가지 있는데, 그건 이 말이 아무런 내용도 전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. 이 말로는 너의 근황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거야. 차라리 얘기하는 동안에는 "그 동안 엄청 끔찍한 시간들을 보냈지" 라든지, "별로 잘 지내지 못했어" 라든지, "그 동안 웹서핑을 엄청나게 했었어요." (JS가 약 1년만에 만났을 때 커피숍에서 한말) 라는 얘기가 반가운거다. 흠... 물론 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잘 해내고,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낸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지만.

그래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찌질함의 감성만으로 승부한다는 편견을 바꾸게 되었다. 그리고 올해 여름으로 넘어가는 문턱 쯤, 2집이 발매되었다. 내가 들어본 곡들에 대해 평을 하자면-
"그렇고 그런 사이" 뿅뿅이 싸운드와 뽕스런 느낌이 충만하다. 좋아 신난다!
"뭘 그렇게 놀래" 역시 툭툭 내뱉는 장기하의 말투가 매력적이다, 하지만 가사와 멜로디는 좀 평이한 것 같다. 가사를 보면,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.
"TV를 봤네" 루나파크 일기에서 소개 받았다. 루나의 친절한 해설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행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. 물론, 언젠가는 알았겠지만 이제 이 곡은 내 기억속에서 그 그림과 한 몸이 되었다.
"깊은 밤 전화번호부" 나도 대략 전화번호가 300개쯤 된다. 외롭고 수다가 아쉬운 날에 전화번호부를 들춰보지만, 막상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적, 누구나 있지 않을까? 장기하 노래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. 누구나 알고있지만 사소해서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 하는데에.
"그 때 그 노래"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, 포탈의 추천검색어로 추측해 보건데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. 좀 더 널리 널리 퍼져도 좋을 노래인데 아쉽다. 다음포탈의 만화속세상에 연재되는 난다 작가의 어쿠스틱라이프에서 사실 스포일러를 당한 거다. 가사를 보고 도대체 어떤 곡인지 궁금했는데 어제 밤 MP3를 듣다가 "아 바로 이 곡이구나.." 그랬지. 사실 HJ와 문자를 하고 또 재즈를 듣고 좀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곡을 듣고 감수성폭발, 눈물이 줄줄 흘렀다. 아직 노래가사가 다 이해되는 건 아닌데, 좀 짐작은 갈 것 같고. 예배당 천장에 덧칠하는 사람이 바로 장기하 아닐까?

좀 유치하게 표현하자면, 결론적으로 장기하와 얼굴들은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거다. 나라면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 경복궁보다 이 앨범을 먼저 소개해 주겠어. 이런 밴드는 정말 보석같은 존재고, 이런 노래를 거의 공짜로 들을 수 있는 한국사람들은 정말 복 받은 거라 생각한다. 예전엔 이런 생각을 잘 못했었는데 작가,음악가,스포츠선수 모두 사회를 정말로 풍요롭게 만드는 존재들이잖아.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것들을 향유하는 대중들은 이런 사람들을 비웃고 깎아내리고 욕하기 앞서 최우선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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